3운법칙이 아담 범죄 직후 즉 세상("세상"이라 함은 인간이 아담 범죄로 부득불 동물적 육체로 움직여 구차히 명맥을 이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지구상의 무대'를 가리킴)이 갓진행되기 비롯하던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데에 이 대목에서의 6하원칙 적용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다름아닌 그 "누가(HO"의 정체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아주 강력하게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동물성 육체의 본능 곧 "죄의 몸"(롬 6.6)에 지배되어 짐승처럼 설쳐대는 판인지라 이 "인간 짐승들"을 3운법칙이라는 운명의 우리(cage) 안에 가두어 두심이니, 인간의 이 야수성을 제재하는 역할만 아니라 이로부터서의 보호 구실도 겸하여, 시도 때도 짬도 없이 죽음을 당하는 만행(가인의 아벨 살해와 같은)의 비극이 없도록 조처하심입니다. <죽을 때>가 되어야 죽도록 "죽음의 때"를 정해 주심입니다. 실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풍경의 인생 무대입니다. 이런 짐승 같은 날파리 목숨이지만 그마저 '삶'이 아닌 '죽음'의 비탄스러운 연출 공간이 이 세상.
이같이 <세상에서 나그네>된 우리의 실상을 알려 주고 경고하기를 성경은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일구월심 자기의 근본인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마음뿐 달리 다른 마음은 눈곱 만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향"이라 함은 애초 인간을 창조하셨던 그 <신령한 몸>. 이 세상은 주님이 실상을 밝히신 대로 "죽은 자"(마 8.22)들의 집합소. 뿐 아니라 악한 영물 용/의 지배 아래 있어(아담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악마의 거짓말을 더 추종함을 인해 자초한 것) "이 세상 신/神"(고후 4.4)의 왕국. 따라서 세상 삶에 연연하여 "남 밑지지 않게" 살려고 "개밥의 도토리 신세" 면하겠다고 끙끙대는 이마다 "천국"(신령한 몸으로의 환원/복귀ㅡ눅 9.27) 영구 탈락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죽음과 사탄의 세상에 속하려고만 애썼으니 그 원대로 사탄과 함께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뿐.
그러하나, 이 엄청난 비극의 현장인 세상 실상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구제책인 "은혜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도리를 만인간에게 화급하게 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알려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면, 왜 주님께서 세상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히 5.7)을 올리셨던가요? 왜 지금 성령으로 계시면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롬 8.26)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인가요? 마치 우리 구원이 아직 <미완성>인 것처럼?
그렇습니다.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머리이신 주님께서 그리하셨으니 그 몸의 각 지체 각 부분이 되어 있는 우리 각자도 머리되신 주님과 동일 보조를 취하지 않고는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엄중 경고임을 반드시 <뼈저리게>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 말씀 전파의 업무를 전담하던 사도들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행 6.4) 한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기도를 아 세웠슴니다. 왜 그렇게 기도가 필수이냐, 우리가 아는 대로 사탄이 이 세상 신으로서 세상을 직접 지배함이 그 이유입니다. 치열한 전쟁 상황인 것입니다. 그 현격한 예시가 오늘날 드러난 "바벨론 신학"의 엄청난(거의 2천년간에 걸친) 횡포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감히 일개 피조물인 악령이 훼방을 놓다니?"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벌어들인 화근이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범죄자 사탄의 거짓말을 더 따른 당연 결과가 "죽은 자"됨 곧 '동물성 육체로의 전락"과 '사탄의 인생 지배'인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인간 세상이 존속하는 한 사탄의 인간 지배는 존속하는 것이요, "바벨론 신학"과 같은 거짓말은 그 기세를 떨칠 수밖에 없는 세상 구조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현재 구원의 은혜는 다름아닌 <하나님(성자) 친히 '죽은 아담'을 대신해 아담 역할을 하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역사이시므로 그래서 사람되셨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원수 사탄과의 전쟁"(창 3.15) 중이신 것입니다. 아담 스스로가 자기 범죄로써 사탄의 명맥을 이어 주고 기승을 부리도록 만들어 준 꼴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의 양상은 원수에게 먼저 발꿈치를 물리고 그 뒤에 그 머리를 발로 으깨어버림으로 끝남이기에 지금까지 그 물린 고통 중에 있는 전황이요 마침내 주님 다시 오심으로써 전세가 역전되어 머리를 밟아버리게 되므로 사탄(그 패거리 악령들과 함께)은 무저갱에 천년간 유폐되고 네피림 무리들은 불못으로 모조리 들어가 영구 청산되는 그런 전투인데 아직 재림파시지 않은 것입니다.
왜 "천년"이냐 하면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세상을 통치할 기간이 천년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을 "마지막 아담"께서 비로소 채우심입니다. 아담이 범죄 않고 살았다면 그 천년간 세상을 다스리며 악인과 의인 및 악령과 거룩한 천사를 "마지막 심판"으로 가려내어 악한 자들을 불못에 던져 넣어 세계를 완전 정리해 변치 않는 영원한 왕국이 비로소 전개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범죄로 수행하지 못했던 바로 이 일을 새 아담 즉 "마지막 아담"으로서 이행하심이 메시야 예수("구원자"란 뜻의 히브리어) 우리 주님의 "천년 왕국"입니다. 사탄 일당이 무저갱에 있다가 이 천년 말에 방면되어 난동을 피우게 되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지 않아 세상을 통치했더라도 천사 가운데 용과 같은 악령들이 생겨 기회를 엿보다가 천년이 끝날 즈음에 필연적으로 반란을 노리게 마련이므로 이와 대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사탄 일당(숱한 악령의 씨들인 네피림 포함)의 지배 아래 놓인 세상이라 그리고 이것이 아담 범죄의 불가항력적 결말인지라, 이들 악의 세력이 <사생결단하고 인생 구원을 막고 방해>하므로 하나님 친히 그 크신 사랑의 구원을 이루셨다고 전부가 아니니 절대 <안일한 생각은 금물>입니다. 여기서 기도의 필요성이 절대적입니다.
발꿈치 물린 상황의 치열한 싸움의 발로가 이 "기도"로써 표출됨이니 이것이 지금 거론되는 기도의 중요성인 것입니다. 기도가 없다는 것은 전투를 포기하고 적에게 바로 투항하는 것이니까. 기도 없이 말씀 전파만 강행하는 것은 심각한 백해무익의 자기 기만임을 알아야 하는 것.
이 경우 사탄 일당의 세력을 아예 싹쓰리 제거하시면 되지 않는가 한다면 그렇다면 아담의 범죄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가 되기에 원리원칙대로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의 의미와 그 중차대함을 마음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벨론 신학의 마술에 걸려 대부분 아이들처럼 굴었던 <철부지 코흘리개>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