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7일 토요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

 


세상은 아담 범죄의 결과로 "거짓말의 아비"("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자아중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함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자아중심]>으로 말함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다"ㅡ요 8.44) 사탄이 세상을 주름잡고 있음을 항상 의식하는 것이  진리(거짓이 아닌)를 아는 우리들의 <세상 거짓과 속임수>에 대처하는 크나큰 자산(밑천)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의 21세기 예언("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빠르게 왕래하며 지식이 더할 것"ㅡ단 12.4)대로 교통 통신 등 분야의 급속 발달(이 모두 주님의 재림에 대처/대비하는 사탄의 초능력의 일환)로 인해 사탄의 거짓말/속임수가 어지러울 정도의 소위 "정보 홍수"를 이루어 범람하고 있는 이 때 그 계략에 속절없이 말려드는 낭패를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 일당들은 거짓말만 나불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작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정력을 낭비/소모시키는 것도 그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 따라서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의 충성된 전파자인 우리들로서는 성경상으로 충분히 밝혀진 천사의 "표적과 기사"(요 4.48) 즉 3운법칙 관련의 방패(shield)만을 들고 있어도 우리 소임을 다하는 오늘날 전투 현장에서 일보도 밀릴 이유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과 그 말씀이신 성경의 <진실성> 관련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력입니다.

고로 흔들림 없는 요지부동의 자세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to give ourselves continually to)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악령들은 중점적으로 기도를 방해합니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기도의 실질적인 위협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에서 교회 사상 괄목할 만한 업적을 기록한 역대 인물들은 예외 없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배경이었고 기도의 산실/産室(birthplace)로부터였습니다.

"너는 범사(매사)에 그를 인정("쉬지 말고 기도함으로써"ㅡ살전 5.17)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In all thy ways acknowledge him, and he shall direct thy paths."(KJV)


본격적인 기도자는 "하나님을 돕는 자"

기도에 본격적으로 힘쓰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스스로는 "구원 받았다" 또는 <대형교회 교역자>라 하여도, <싸울 줄>도 모르고 <일할 줄>도 모르고 그냥 무용지물. 세상에서 무용지물이라 천국에도 무용지물일 터이니 그냥 천국 입국 사절. 그냥 '놀고 먹는' 사람이 많은 것이 오늘날 "교회"의 일반적 특징이니 그대여, 너무 늦기 전에 각성하시라.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말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강한 자, 이스라엘의 원수)를 치지 아니함이라" 하였다"(사사기 5.23). 영적 전쟁이 한창 치열한이 시대에 기도로써 "하나님을 돕는" 것이다. 성령으로 오늘도 우리 인간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신음 중에) 간구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도와 드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다. 그가 출가한 후 7년간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된 지 84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더니 마침 이 때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예수님)에 대하여 말하니"(눅 2.36-38).

이처럼 지극 정성으로 하나님 섬긴(기도로써) 하나님의 여종이라(19세에 결혼했어도 당시 나이 100세를 넘겨),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세상에 오시는 구주님을 영접해 맞는 지구상 단 두 명의 영접사 중 하나로 뽑아 주셨으니 그 영예/영광이야 하늘을 찌르듯 드높다. 과연 당시로나 지금으로나 기도하는 심령을 얼마나 소중히 보시는지 그 좋은 본보기라 할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이런 설명을 덧붙일 리 없다. 이를 통해 오늘날도
<성령의 메시지>를 우리는 듣게 된다. 그대여, 이 교훈의 소중함을 부디 마음 속에 새겨 두시라. 




2026년 1월 16일 금요일

기도 않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무식의 극치


3운법칙이 아담 범죄 직후 즉 세상("세상"이라 함은 인간이 아담 범죄로 부득불 동물적 육체로 움직여 구차히 명맥을 이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지구상의 무대'를 가리킴)이 갓진행되기 비롯하던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데에 이 대목에서의 6하원칙 적용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다름아닌 그 "누가(HO"의 정체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아주 강력하게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동물성 육체의 본능 곧 "죄의 몸"(롬 6.6)에 지배되어 짐승처럼 설쳐대는 판인지라 이 "인간 짐승들"을 3운법칙이라는 운명의 우리(cage) 안에 가두어 두심이니, 인간의 이 야수성을 제재하는 역할만 아니라 이로부터서의 보호 구실도 겸하여, 시도 때도 짬도 없이 죽음을 당하는 만행(가인의 아벨 살해와 같은)의 비극이 없도록 조처하심입니다. <죽을 때>가 되어야 죽도록 "죽음의 때"를 정해 주심입니다. 실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풍경의 인생 무대입니다. 이런 짐승 같은 날파리 목숨이지만 그마저 '삶'이 아닌 '죽음'의 비탄스러운 연출 공간이 이 세상. 


이같이 <세상에서 나그네>된 우리의 실상을 알려 주고 경고하기를 성경은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일구월심 자기의 근본인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마음뿐 달리 다른 마음은 눈곱 만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향"이라 함은 애초 인간을 창조하셨던 그 <신령한 몸>. 이 세상은 주님이 실상을 밝히신 대로 "죽은 자"(마 8.22)들의 집합소. 뿐 아니라 악한 영물 용/의 지배 아래 있어(아담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악마의 거짓말을 더 추종함을 인해 자초한 것) "이 세상 신/"(고후 4.4)의 왕국. 따라서 세상 삶에 연연하여 "남 밑지지 않게" 살려고 "개밥의 도토리 신세" 면하겠다고 끙끙대는 이마다 "천국"(신령한 몸으로의 환원/복귀ㅡ눅 9.27) 영구 탈락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죽음과 사탄의 세상에 속하려고만 애썼으니 그 원대로 사탄과 함께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뿐. 


그러하나, 이 엄청난 비극의 현장인 세상 실상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구제책인 "은혜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도리를 만인간에게 화급하게 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알려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면, 왜 주님께서 세상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히 5.7)을 올리셨던가요? 왜 지금 성령으로 계시면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롬 8.26)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인가요? 마치 우리 구원이 아직 <미완성>인 것처럼? 


그렇습니다.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머리이신 주님께서 그리하셨으니 그 몸의 각 지체 각 부분이 되어 있는 우리 각자도 머리되신 주님과 동일 보조를 취하지 않고는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엄중 경고임을 반드시 <뼈저리게>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 말씀 전파의 업무를 전담하던 사도들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행 6.4) 한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기도를 아 세웠슴니다. 왜 그렇게 기도가 필수이냐, 우리가 아는 대로 사탄이 이 세상 신으로서 세상을 직접 지배함이 그 이유입니다. 치열한 전쟁 상황인 것입니다. 그 현격한 예시가 오늘날 드러난 "바벨론 신학"의 엄청난(거의 2천년간에 걸친) 횡포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감히 일개 피조물인 악령이 훼방을 놓다니?"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벌어들인 화근이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범죄자 사탄의 거짓말을 더 따른 당연 결과가 "죽은 자"됨 곧 '동물성 육체로의 전락"과 '사탄의 인생 지배'인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인간 세상이 존속하는 한 사탄의 인간 지배는 존속하는 것이요, "바벨론 신학"과 같은 거짓말은 그 기세를 떨칠 수밖에 없는 세상 구조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현재 구원의 은혜는 다름아닌 <하나님(성자) 친히 '죽은 아담'을 대신해 아담 역할을 하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역사이시므로 그래서 사람되셨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원수 사탄과의 전쟁"(창 3.15) 중이신 것입니다. 아담 스스로가 자기 범죄로써 사탄의 명맥을 이어 주고 기승을 부리도록 만들어 준 꼴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의 양상은 원수에게 먼저 발꿈치를 물리고 그 뒤에 그 머리를 발로 으깨어버림으로 끝남이기에 지금까지 그 물린 고통 중에 있는 전황이요 마침내 주님 다시 오심으로써 전세가 역전되어 머리를 밟아버리게 되므로 사탄(그 패거리 악령들과 함께)은 무저갱에 천년간 유폐되고 네피림 무리들은 불못으로 모조리 들어가 영구 청산되는 그런 전투인데 아직 재림파시지 않은 것입니다.


왜 "천년"이냐 하면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세상을 통치할 기간이 천년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을 "마지막 아담"께서 비로소 채우심입니다. 아담이 범죄 않고 살았다면 그 천년간 세상을 다스리며 악인과 의인 및 악령과 거룩한 천사를 "마지막 심판"으로 가려내어 악한 자들을 불못에 던져 넣어 세계를 완전 정리해 변치 않는 영원한 왕국이 비로소 전개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범죄로 수행하지 못했던 바로 이 일을 새 아담 즉 "마지막 아담"으로서 이행하심이 메시야 예수("구원자"란 뜻의 히브리어) 우리 주님의  "천년 왕국"입니다. 사탄 일당이 무저갱에 있다가 이 천년 말에 방면되어 난동을 피우게 되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지 않아 세상을 통치했더라도 천사 가운데 용과 같은 악령들이 생겨 기회를 엿보다가 천년이 끝날 즈음에 필연적으로 반란을 노리게 마련이므로 이와 대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사탄 일당(숱한 악령의 씨들인 네피림 포함)의 지배 아래 놓인 세상이라 그리고 이것이 아담 범죄의 불가항력적 결말인지라, 이들 악의 세력이 <사생결단하고 인생 구원을 막고 방해>하므로 하나님 친히 그 크신 사랑의 구원을 이루셨다고 전부가 아니니 절대 <안일한 생각은 금물>입니다. 여기서 기도의 필요성이 절대적입니다.


발꿈치 물린 상황의 치열한 싸움의 발로가 이 "기도"로써 표출됨이니 이것이 지금 거론되는 기도의 중요성인 것입니다. 기도가 없다는 것은 전투를 포기하고 적에게 바로 투항하는 것이니까. 기도 없이 말씀 전파만 강행하는 것은 심각한 백해무익의 자기 기만임을 알아야 하는 것. 


이 경우 사탄 일당의 세력을 아예 싹쓰리 제거하시면 되지 않는가 한다면 그렇다면 아담의 범죄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가 되기에 원리원칙대로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의 의미와 그 중차대함을 마음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벨론 신학의 마술에 걸려 대부분 아이들처럼 굴었던 <철부지 코흘리개>였던 것입니다.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육하원칙에 의한 21세기 "표적과 기사"(요 4.48)



거룩하신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가 명확히 육하원칙(六何原則)에 의해서 발표된 것은 유사이래 최초이자 마지막(주님 재림 전으로는)입니다. '육하원칙'은 기사나 보고서 등 신뢰성 있는 글쓰기에서 필수적으로 다루는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의 6가지 핵심 요소를 말하는 바, 글의 기본적인 뼈대를 잡아주는 중요한 원칙(영어의 "5W1H[Who, What, Where, When, Why & How]")입니다. 이 6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글을 구성하면 정보 전달이 명확해져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므로 교육과 실무에 널리 활용됩니다. 

여기 "6하원칙 하나님 표적과 기사"는 다름아닌 "21세기 표적과 기사" 중 하나인 3운법칙을 말합니다.

• 누가(Who): 행위의 주체.....1. 하나님
• 언제(When): 사건 발생 시점.....2. 인류가 영생하는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으나 아담 범죄 결과로 "육의 몸"(고전 15.44) 즉 "죽은 자"로 돌연변이하면서부터 그 초자연적 특성의 기운이 한동안 잔존했던 현상으로서 그 결과 노아 당시까지도 천년 가까운 수명이었을 때
• 어디서(Where): 사건 발생 장소.....3. 시기심으로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창 4.6) 현장 및 "소년"이 라멕에게 달려들어 해치려 하자 라멕이 자기 방어로 엉겁결에 소년을 쳐 죽인(4.23) 두 살인 현장
• 무엇을(What): 사건 내용 즉 대상.....4.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 생애를 말함이니 다시 말해 일정 연령에 달하면(18,9세가 넘으면ㅡ프랑스의 쟌다르크 소녀가 현재 그 대표적 예)
• 어떻게(How): 사건 진행의 방식.....5. 만유의 기본 원리인 3위1체의 법칙에 기반한 3운법칙으로 LP(활동기, 전성기), DP(비활동기, 침체기), JP(유청소년기ㅡOT, SN형에만 적용되고 FS형은 3위1체 도식/圖式 다시 말해 성경에 "한 때, 두 때, 반 때"로써 미리 예언되어 있었던 형식에 맞추어져 제외) 따라 철저히 통제 관리됨으로써(그렇게 되도록 모든 인간의 운명을 처음부터 미리 정하심)
• 왜(Why): 사건의 이유 즉 원인.....6. 가인과 라멕의 경우처럼 어느 누구든 사람 목숨을 함부로 끊어 놓지 못하게 철저한 보호막 울타리를 쳐놓으신, 마치 이 모든 것을 카메라 렌즈로 "아담 영상(ADAM pix)"의 DPA(Devils' Practical Appearances), NSO(Nephilim Soul Orbs)가 촬영된 것처럼(사진처럼 완벽한 증거는 없어) "촬영된"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의 가시적/可視的 <실물 증거>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보다 격조 높은 "표적과 기사"는 없기에 이 "마지막 때" 유사이래 최초의 "21세기 표적과 기사"라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실존> 및 그 <역사/役事하심>의 200% 확증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거듭 거듭 강조하신 것이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역속이십니다. 물론 자아중심의 이기적 기도가 아닌(자아중심으로써는 이 하나님의 우주에 살 영적 존재가 없어ㅡ약 4.3) 오직 상대방중심의 "새 생명"의 "새 사람"인 경우에만. 왜냐 하면 악령들도 초능력으로 "기도 응답"인 양 얼마든지 속일 수 있으므로 오늘날 "응답" 자체에다 어떤 비중이든 두지 말아야 합니다(마 24.24). 내가 주님 은혜로 새 피조물이 되었는지 여부는 성령 친히 우리의 영혼과 더불어 증거하시니까(롬 8.16).










2026년 1월 14일 수요일

로마서 8장 26,27절의 <성령의 기도>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심이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기도할 바를"ㅡ개정개역)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이다"(롬 8.26).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NIV-1984) "Likewise the Spirit also helpeth our infirmities: for we know not what we should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itself> maketh intercession for us with groanings which cannot be uttered."(KJV)

"마음을 감찰하시는("살피시는"ㅡ개정개역)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심이니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다"(:27).

"And he who searches our hearts know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the Spirit intercedes for the saints in accordance with God's will."(NIV-1984) "And he that searcheth the hearts knoweth what i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he maketh intercession for the saint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KJV)

[아래 "새번역"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됨을 두 가지 점으로 지적한다. "위하여"를 왜 굳이 "대신하여"라 하나? "대신하여 죽으심"이라는 오역의 여파인 것 같다. 우리말 어감으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시니까 우리들 자신은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 위한 기도에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아도 된다"는 큰 일 날 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왜 "사람의 마음"이라 하나? 이 대목에서 가리키는 것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이
신 바, '성부"께서는 사람의 마음은 물론 "성자'의 마음도 아신다는 의미이다.]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27.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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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역에서 NIV는 "친히 간구하신다"에서 "Himself"라 했고 KJV는 "Itself"라 했다. 흠정역은 원어에 충실하다는 정평이 있다. 필자는 성경을 반드시 열심히 읽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원어 공부 생각은 일절 없었던 것은, 그렇게 되면 거의 사람마다 무조건 원어를 접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불필요한 인식 조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 하나님 친히 살피시는 성경 번역 사업이라 확신했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리 감독하시니까 단지 영역(KJV)만 참고해도 충분하다 생각한 것이다.

KJV가 성령 관련해 인칭대명사(Himself)를 쓰지 않고(이런 경우에서만)
 "it"로 받은 것은 원문에 그렇게 되어 있음이라 보는 것이다. 그럼 원문 집필자인 바울 사도는 왜 그렇게 표현했느냐 하면,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고전 2.11)이라 했듯이, 사람과 그 영혼을 분리해서 설명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둘 다 인칭대명사로 설명할 수 없어 부득불 "영" 관련해서는 "it"로써 구별할 수밖에 없음을 감안했던 무의식적 판단으로 그리 되었으리라 보아도 무방하다는 결론.

하나님께서도 그런 정도야 크게 흠 잡을 이유가 없다고 보셨을 수 있고. 필자의 과문 탓인지는 모르나 성령 관련해 이런 식으로 성령을 지칭한 예는 이 하나뿐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성령"은(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하나님 성부 및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심이다. 그러나 성자께서 성부의 형상 곧 <형체>이신즉 <실체>이신 성부보다 항상 전면/前面에 <나타나심>(말 그대로 "형상"ㅡ고후 4.4/골 1.1이시니까)을 감안할 때 이 대목에서도 "성령"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곧 메시야 예수 주님께서 그와 같이 우리 각자를 위해 간구하심이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심"이니, 여기 탄식은 영역에서 "groans"이다. '고통, 불행 등으로 인해 내는 "신음(소리)"을 뜻하며 깊고 긴 소리로 아픈 소리뿐 아니라 극심한 심적 불편을 표현함'이다. 부흥 전도자 찰즈 피니 목사와 마치 그 그림자처럼 함께 하며 기도자로서 7년간 일관되게 동역했던 대니얼 내쉬(Daniel Nash) 목사 역시 그와 같은 기도의 표본이었다. 주님께서 
육체로 땅에 계실 때도 "심한 통곡과 눈물(strong crying and tears)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던"(히 5.7) 그대로다. 기도가 이 정도되면 자연스럽게 금식 기도로 진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2026년 1월 13일 화요일

"그래도 이같이 내가 이루어 주기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에스겔 36.36-37.
모든 일은 
기도로써 시작됩니다.
지금까지는 오늘날
전파되어야 마땅한
말씀의 윤곽이
정해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제는 이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러,
가장 먼저
기도에 전념할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합심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저희 심령을
감화 감동시켜 주시기를,
저희 심령을
감화 감동시켜 주시기를
간구하옵니다."


성경의 서릿발 경고

성령울 선물로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가 구원되는데 주님 친히 성부 하나님과 하나되시어 내 안에 오심으로 나와 "한 영"이 되시는 까닭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 회개의 세례를 받음으로 먼저 죄부터 용서가 되는 것은, 죄가 그대로 있는 더러운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죄 용서 받는 것은, 믈론 회개했으니까 즉 향후 절대로 죄짓지 않으리라(하나님 말씀에 절대 복종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으니까 이를 근거로 용서하심이니, 실제로는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으로 되는 모든 일이나, 우리의 회개를 믿어 주시고 수용해 주시어 앞당기시는 조처이십니다. 

여기서 명백히 나타나는 것은, 이후부터는 하나님 뜻대로 하겠다는 우리의 결의(회개)의 중요성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겠다> 즉 "행함, 행위"의 순종인 것입니다. 멸망의 바벨론 신학 즉 사탄의 거짓말은, <죄인이지만 즉 죄 짓는, 죄 지을 수밖에 없는 그대로> 주님께 나아오지만 그래도 구원 받으니까 그래서 "은혜"라는 너무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궤변에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 즉 불순종힘으로 "죽은 자"가 되었으니, 이제 "산 자"가 되려면 불순종이 없어야 즉 죄 짓지 않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주님과 "한 영"이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우리의 구원도 당연히 "짝의 원리"를 따름이니 즉 "하나"됨에서는 반드시 상대방중심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자아중심일 수가 없습니다. 남녀 "한 몸"됨에서 남자 몸이 여자 것이 되어 여자만 위하고 여자 몸 역시 똑같이 그러한 이치와 같습니다. 즉 주님과 내가 "하나"되는 원리를 따라 나를 구원하심이니,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내 것이 되도록 나를 위하심이었고, 나 또한 주님이 그 피값으로 사신 것이 되어 주님의 것이 되니까 절대 순종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머리는 몸 위하고 몸은 머리 위함으로 '한 몸', "하나" 됨입니다. 성경에 그래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남자에게서 여자가 났으니까)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성자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셨으니까)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성부)이시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이시니까 몸이 머리의 지시대로 따라 행동하는 것 자체가 생명입니다. 머리를 떠나서는 몸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행함, 행위"인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죽은 자"가 이제는 "산 자"가 되었으니 너무나 당연하게 산 자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행함으로 구원되지 못한다" 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죽은 자"의 처지가 된 실상은 모른 채 따라서 구약시대에 그렇게 강조했던 희생제물의 <형체>적 의미의 그 <실체>이신 메시야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 자"됨이 급선무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무식하게도 무턱대고 <계명 지키는 순종의 행위>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무슨 행동을 한단 말인가요.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나요. 

원래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우리 피조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심이지 하나님 자신을 위하심이 아니니 이것이 3위1체로서의 생명의 법칙인 것입니다. 만사가, 만물이 이 원리에서 한 순간이라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나면 서 지 못하고 무너지는 판이니까. 악마 사탄의 자아중심이
그리고 아담의 범죄가 어떤 폐악과 비극을 끼쳤는지 역사가 증언합니다. 동물성 육체가 자아중심인 것은 기계적이라 자유의지의 자기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자아중심)에는 예컨대 사탄처럼 고의적으로 짓는 것이 있어 이는 용서가 안됩니다. 반면 아담의 범죄로 "죽은 자" 즉 동물성 육체가 됨으로써 인간은 "죄의 몸"(롬 6.6)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는데 
이는 메시야 우리 주님 친히 성령으로 우리 각자에게 임하심으로써 "하나"(요 10.30)됨의 이치를 따른 전적인 상대방중심의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함"(갈 5.25) 인지라 완전 극복됩니다. "주님께서는 영이시니 주님의 영(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는"(고후 3.17)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유의지에 따른 <사랑>과 직결되기에, 사랑이 식어지면 자아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어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서릿발 경고를 발하는 것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

  세상은 아담 범죄의 결과로 "거짓말의 아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자아중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함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